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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3.07.09.일요예회- 새로운 "일원상 서원문" 독경 운곡을 연습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하면서, 남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못해 고통 받는 사람이다. 이곳 원불교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줄 아는 용심법(用心法)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란다."
고등학교 2학년 때(1973년 3월), 친구따라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원불교해운대교당 법회에 참석했다. 수많은 추억과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고민과 불면을 밤을 지새울 때 교당의 분위기와 친구들의 선한 모습들, 그리고  교무님이라고 불리우는 원불교의 성직자의 위와 같은 설교 말씀을 듣고 어린 마음에 큰 감동을 느꼈다. 
 
학창시절과 청년시절, 그리고 지금, 칠십의 고개 마루에 서서 나를 반조해보니 나는 어느덧 원불교 문화에 듬뿍 젖어들었다. 
오십 년 가까이 원불교 교당에 다니면서, 내가 느끼고 체득한 원불교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원불교는 종교로써 미신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가르침이 사실에 바탕한 진리의 본래 모습을 설파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마음의 여유와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르침을 준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당하는 고통과 기쁨의 원인을 파악하여 진면목을 사실적인 경험에서 깨닫게 하므로  아닌 마음 때문에 나도 모르게 고통 받는 삶을 담박 초월하게 해준다. 이는 억지스러운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이 내가 느끼는 신선한 점이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생명가진 존재들의 필연 관계는 천지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은혜와 관계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은(四恩), 또 인간으로서 만물의 영장이게 한, 세 가지 갖춰야 할 힘-마음의 힘, 이런 진리의 모습을 우리는 삼학팔조 사은사요라는 여덟 글자로써 배웠다.
 
지난 일요일(2023년 7월 9일) 서울교당 일요 예회에서 원불교 서울교구에서 선정한 독경 운곡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일원상서원문"의 독경 운곡을 서울교구 차원에서 제정하여 서울 교구 소속 교당 법회에서 시연을 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생소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4십 여년을 해오던 불교식의 우리 독경과는 전혀 다른 운곡이었다. 그 운곡을 따라 하는데 거부반응이 살짝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문화충격.
 
나는 전체 공심(公心)의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래, 새로운 운곡대로 일원상서원문을 한 번 그대로 따라 해보자...' 
'모든 일의 시작은 사소하고 미미하지만, 나중에 가면 이것이 새로운 독경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고, 우리가 그동안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들이 모두 해소되지 않겠는가...'
나는 마음을 다 잡고 새로운 운곡대로 일원상서원문을 따라 해보았다. 여전히 내 정서상 서먹서먹하다.
호흡이 자유롭지 못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라는 다짐을 마음 속으로 다잡으면서 운곡이 입에 익을 때까지 독경을 계속했다. 
 
'아... 언제 새로운 운곡에 익숙해져서, 독경을 통한 마음의 일심이 유지되고 기쁨을 만끽하게 될까!'

무조건 실천해보자! 그렇게 해보자.
(108년 7월 10일 회사 퇴근시간 즈음에 이 글을 작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