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아도 사은이고 몰라도 사은이다

[국민일보]장로·권사·집사 직분 없앤 평신도 공동체… 신행일치 삶 산다

장로·권사·집사 직분 없앤 평신도 공동체… 신행일치 삶 산다

 국민일보 2024년 6월 3일 유경진 기자 ykj@kmib.co.kr

 

 

 


한강희 목사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낙산교회 앞 계단에서 “지속가능한 교회를 꿈꾼다”고 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Copyright@국민일보

서울 종로구 낙산교회(한강희 목사)는 올해 40주년을 맞이했다. 주택가 언덕에 우뚝 서있는 교회는 인근 주택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전상건 목사) 소속인 교회는 1984년 평신도 6명이 세웠다. 이들이 교회 창립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당회와 장로 권사 집사 등 직분을 없앤 것이다. 이곳에는 ‘교우님’만 존재한다. 해당 교회를 이끄는 한강희(44) 목사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평신도 교회로서의 정체성

낙산교회의 창립 정관에는 ‘교권주의적 교회를 지양하고 복음주의에 입각한 신앙공동체 중심의 교회가 되고자 노력한다’는 문장이 명시돼 있다. 교회 운영구조의 민주화를 위해 당회를 의도적으로 구성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단법적으로는 미조직 교회로 남아있다.

한 목사는 “교회 거버넌스에 있어서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며 “당회 대신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교회 모든 사안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운영위원회와 실행위원회는 청년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각각 6인, 10인으로 구성돼있다.

낙산교회는 교회 안팎에서 신앙이 일치하는 ‘신행일치’ 삶을 강조한다. 한 목사는 “대부분의 교회 성도님들은 삶에서 신앙을 살아낸다”며 “사회선교, 생태 운동, 통일운동 등을 통해 세상에 헌신한다. 이런 사역이 개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큰 그림에서 신앙공동체로 서로 연결돼 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 섬겨야 하는 근거는 하나님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사회와의 조화도 중요한 지점이다. 낙산교회는 평신도의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이기에 지역 섬김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부터 원예강좌를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제외하고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인근 경로당 어르신을 대상으로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원예업에 종사 중인 교우를 중심으로 강좌와 꽃잔치를 펼친다. 35명의 노인은 화초와 꽃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며 인생의 활기를 되찾았다. 노인 학생의 공연과 교회학교 및 교인들이 함께 만드는 시간은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이외에도 장애인 야학센터에 선교후원금을 기부해 작지만,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한 목사는 “낙산교회가 평신도 신앙공동체로서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세상과 소통하고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어떻게 우리의 것을 받아들일지에 방점을 두고 고민한다”고 했다.

지속 가능한 교회의 가능성

교회 예배당 벽에는 ‘이웃사랑으로 하나님 신앙을 증거하는 교회’가 쓰인 플랜카드가 붙어 있었다. 낙산교회의 정체성이다. 교회의 권위주의로 발생하는 문제를 극복하고 변화하는 세상과 소통하며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자 하는 비전이 담겨있다.

이 가운데 한 목사가 강조한 건 교회의 ‘지속 가능성’이다. 그는 한국교회가 사회 속에서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정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피상적 섬김과 돌봄 이전에 이웃에 대한 고통을 진정으로 공감하고 있는지 자가진단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그는 “가나안 교인 증가, 명목상 그리스도인 등장, 탈교회화 등 여러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가 교회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고 복음을 전할 능력까지 도전받게 했다”고 했다.

이어 “교회가 신뢰도를 회복하고 지역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데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건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지역 사회와 소통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라며 “복음은 언어로만 전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수께서 당대 이방인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보인 깊은 차원의 소통을 그리스도인이 재현한다면 기독교 신뢰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한 목사는 신앙의 순례에 중요한 건 공감에서 비롯된 연대라고 했다.

그는 “목회자는 성도가 어떻게 말씀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삶을 지금 재현해 낼지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성도는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가정·직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곳곳에 펼칠 수 있도록 생동감 있는 영성을 갖춘 원숙한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자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획일화된 대형교회를 추구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고 봐요. 성도의 의식이 변화하고 작은 교회도 지속 가능한 교회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도의 가치를 이 땅에서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의 신뢰도 하나만으로 비관할 필요도 없어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를 함께 고민하고 기도로 준비하면 한국교회 선교운동 물결이 다시 일어날 거라고 믿어요.”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