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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2024신년특집제언, 종단 개혁 30년, ‘사부대중 함께 나서는 전법’ 성공하려면

2024신년특집제언, 종단 개혁 30년, ‘사부대중 함께 나서는 전법’ 성공하려면

      불교신문

 2024.01.01 11:27호수 3801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불교 좋다는 청년과 지식인, 이들을 맞이할 준비 갖췄나?

이제 불교는 젊은 도시 중산층이 즐기고 좋아하는 고급문화다. 소속 종단, 불자여부, 출재가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수행과 대화를 통한 교화만이 필요하다. 이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사진은 젊은이들과 명상을 주제로 대화하는 총무원장 스님.

탈종교 가족 해체 고령화 등 한국 종교계 근간 흔드는 위기

수행 채식 산사, 젊은 중산층 선호 트렌드 갖춘 불교는 기회

소속 종단, 불자여부,출재가 구분 등 기존 문법 효력 잃어

수행과 정법으로 교화하는 부처님 당시 불교 본래 모습 요구

 

2024년은 종단 개혁 3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30년 전 봄 조계종은 종단 개혁을 단행했다. 1994년 개혁회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규정하면 종단 책임제다. 외형은 교육원과 포교원 별원화, 민주화가 핵심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종단 책임제다. 이는 포교에서 잘 드러난다. 군종특별교구, 포교사단을 비롯한 각종 신행 단체는 개혁 후 종단 등록을 강요 받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반발과 저항이 따랐지만 결국 종단 산하로 편성돼 오늘에 이른다. 승가교육도 마찬가지다. 지방 승가대학 마다 커리큘럼도 학제도 제 각각이었던 승가교육은 종헌 종법에 따라 일률 정비된다. 사회복지 역시 개인이나 개별 사찰 차원에서 종단 중심제로 일원화 한다.

종단 책임제는 시대의 요구였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제 위상을 찾기 위해서는 근대화된 조직이 필요했다. 전 근대는 강력한 지도자의 권위에 의지하지만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근대 사회는 조직이 이를 대신한다. 조직을 유지하려면 테크노크라트가 필요하다. 우수한 인력 확보는 재정 뒷받침이 필수다. 1994년 개혁 후 종단은 재정과 인력 면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조직이 갖춰지고 인력이 확충되자 법령도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강력한 중앙집중제 아래 훈련된 종무원이 잘 짜여진 법령으로 움직이는 전국적 조직, 바로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이다.

종단 책임제가 정착하면서 한국불교는 비약적 발전을 했다. 대정부 교섭력이 강화되면서 종단 자주성을 옥죄었던 각종 국가 법령이 바뀌었으며, 민족문화유산 예산이 대폭 늘어났다. 장차관 국무위원과 정치인들의 총무원장스님 친견은 이제 필수 예법이 됐다. 현직 대통령 까지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에 참석하는 관례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이처럼 강력한 조직과 재원 인력을 갖춘 불교 교단은 한국의 조계종이 유일하다.

그런데 위기를 논한다. 혁명은 모순을 먹고 자라며, 개혁은 위기가 먹이감이다. 정화의 자양분은 대처승의 무능력과 사익(私益)이었고 1994년 개혁은 시대에 뒤떨어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종단 조직이 문제였다. 10,27 법난 이후 신진 승가는 현대 학문과 사회의식으로 무장했는데, 종단은 전 근대적 조직과 운영으로 수용 능력이 없었다.

그러면 10여 년 전부터 유령처럼 떠돌던 위기의 실체는 무엇인가? 정화와 1994년 개혁은 내부 문제였지만 현재 위기는 외부에서 불어왔다. 삼각파도라는 위기 실체는 탈종교, 출가자 감소, 고령화 등 모두 사회 구조에서 비롯됐다.

위기가 외부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극복 주체도 대상도 모호하다. 논의는 무성하지만 대책이 없었던 이유다. 오랜 논의와 고민 끝에 전법(傳法)이 설정됐다. 구체적으로 대학생, 즉 청년 포교를 통한 한국불교 중흥이다. 주체를 사부대중으로 설정했다. 기존 정화 개혁과는 전혀 다른 해결책이다. 위기의 본질이 다르다 보니 방안 역시 달라진 것이다. 핵심은 전법 보다 사부대중이다.

사부대중 주인론은 아직 원론 수준에 머문다. 대한불교조계종 종헌 제3장 제8조 ‘본종은 승려(비구, 비구니), 신도(우바새,우바이)로서 구성한다.’고 재가자를 종단 구성원 일원으로 명기했지만 현실은 출가 2부중 중심이다. 역설적이게도 재가대중의 힘이 강력했던 시기는 개혁 이전이었다. 1954년 정화를 통해 종단 주인이 출가 독신자임을 분명하게 했지만 세력이 미약했다. ‘독신 출가승’은 대처승에 비해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사회적 영향력, 물질적 토대 또한 취약했다. 이를 보완한 것이 재가자였다. 출판 전법 등 모든 면에서 재가자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심지어 1994년 개혁 주도 세력의 사회화도 청년 재가불자들의 지원에 힘 입었다.

재가자의 역할은 개혁 후 무대 뒤로 사라진다. 재가자에 의지했던 포교, 출판, 교육 등 전 분야가 종단 책임 혹은 사찰 중심으로 변화한다. 재가자는 종단 내 공무 역할을 담당하는 종무원이나 종단 산하 기관 포교사 등 종단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활동하는 역할로 바뀌었다. 역할만 변경된 것이 아니라 재원도 종단과 사찰에서 발생한다. 재력을 갖춘 몇몇 단월에 의지하던 시대는 개혁과 더불어 저물고 재원 인력 조직을 갖춘 종단이 책임 주체가 됐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왜 사부대중인가? 재가자는 정화를 함께하고 그 후 30여 년 간 종단이 제자리를 찾지 못할 때 제 역할을 다하고 역사의 뒤로 물러났는데, 왜 다시 호출하는가? 지난 30년간 종단이 책임진 결과 세계 최대의 종교 단체를 일궜는데, 왜 한국불교가 위기라고 걱정하는 가?

이 문제를 풀려면 눈을 종단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 아니 전 세계를 대상으로 놓고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한다. 정화와 개혁을 마디 삼아 성장해온 지난 60년은 종단의 시간이었다. 주체를 세우고 조직을 만드는 내부 일이었다. 그 역할은 훌륭하게 해냈다. 그런데 파도가 외부에서 들이닥치자 크고 튼튼한 배라고 자부했던 믿음이 깨진 것이다. ‘탈종교’ ‘출가자 감소’ ‘신도 고령화’ 라는 삼각파도에 부딪힌 ‘대한불교조계종호(號)는 순식간에 휘청거리며 표류 위기에 처했다. 아직은 견디지만 대비하지 않으면 침몰할 수도 있음을 인지했고, 그 심각성을 가장 깊이 오래 고민한 측에서 ‘사부대중이 함께 하는 전법’을 제시했다.

파도가 외부에서 밀려왔기 때문에 사회를 읽어야 한다. 종교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가족 해체다. 불교 뿐만 아니라 한국의 종교는 가족을 근간으로 유지, 성장해왔다. 그런데 1인 가족 비율이 4인 가족을 넘어섰다. 한국 종교는 3대, 2대 구성원으로 이뤄진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여성 신도의 여망에 의지하는데, 그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가족의 안녕이 아니라 개인이 주인인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살아남으려면 바뀌어야한다. 종교는 물질적 풍요, 편리한 현대문명 속에서 불안하고 공허한 개인의 심리적 위기에서 역할을 찾아야한다. 다행히 불교는 그 점에서 다른 종교를 압도한다. 고즈넉한 산사 풍경, 차를 음미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차담, 화학 조미료를 뺀 사찰음식, 수행 명상은 현대인들이 가장 갈망하는 문화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불교가 가장 선호하는 종교로 선정되는 이유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천주교도 절을 하고, 기독교도 명상을 한다. 불교 교리를 예사로 갖다 쓴다.

한국의 산사, 절, 참선 수행은 세계 10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젊은이, 전문직 지식인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미국 등 유럽 백인층이 20여년 전부터 걸어갔던 길을 현재 대한민국 중산층 젊은이들이 따라간다. 이들은 그러나 불교 신자도 조계종도(宗徒)도 아니다. 신앙인도 아니다. 다만 불교 문화 수행을 향유할 뿐이다.

문제는 이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는데 있다. 젊은 중산층 전문직 지식인들이 좋아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위기를 논하는 것은 사찰의 관심과 문화가 가족에 기반한 기성 신앙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불자’들에 적응하고 이들을 종단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스님들 역시 달라져야한다. 출재가, 소속 종단 등 기존 문법은 모두 버려야한다. 부처님 법과 수행법을 통한 교화 등 불교의 본질만이 유효하다.

그래서 갖춰야할 덕목은 수행 명상을 지도하고 대화를 통해 교화할 능력이다. 다행히 총무원장스님이 나서 명상 표준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완성되면 한국 명상 수준은 획기적으로 상승하고 간화선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비싼 돈을 들여 외국에서 수입한 명상에 빠진 사람들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불교는 할머니 어머니가 믿던 고리타분한 기복신앙이 아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 채식, 동물을 사랑하는 세련되고 국제적 상류 문화로 여긴다. 우리는 이들을 교화하고 받아들일 수준과 자격을 갖췄는가? 사부대중 전법은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불교신문 3801호/2024년1월1일자]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