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出産)
지금
앞에 있는
이 생명 하나
어디서 왔나하고 경이롭게 살피다가
숨 죽여 깊은 생각에 하염없이 빠져드네
그동안
뭘 모르고
엄벙덤벙 살아왔나
딸아이 며늘아기 아내를 바라보다
그 사랑 보는 순간 불 데인 듯 놀랐네
아가야
어머니야
사랑하오 그대여
뼈를 깍는 희생이라 말로는 다 못하지
한 생명 울음소리에 나 이제야 눈뜨네.
가을
우주의 눈짓인가 생명 담은 시간인가
하나 둘 툭 투욱 시나브로 떨어지네
나 또한 이 생 다하면 저렇게 가야하나.
울긋불긋 벚꽃단풍 알록달록 낙엽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월 속에 지는데
저렇게 돌아다니다 무엇 되어 만날까
그대와 동행하는 익어가는 가을 길
가만히 껴안으면 나 어느덧 사라지고
내 사랑 그대 눈 속에 붉은 단풍 떠가네.
첫사랑
말 없는 눈빛으로 그대 손 맞잡으니
떨리는 입술 사이 향기로운 그대 숨결
나 오늘 그대와 둘이 오솔길을 걷는다
그윽한 숨소리로 그대 나를 부르고
따스한 음성 안에 소리 죽여 다가서니
커다란 눈망울 속에 흔들리는 은물결
포근한 그대 품에 뜨거운 내 손길이
향긋한 속살 속에 황홀하게 스며들고
샛노란 번쩍임으로 청실홍실 엮는다.
중력극복
첫아이 기적 앞에 감탄사 연발하는
첫돌을 앞에 두고 아기 처음 걷는다
하나아 둘 세엣 네엣, 앗! 넘어져 조심해
앙증 맞은 발가락에 한껏 힘을 모으는
예쁜 아기 아장걸음 우리 아기 걷는다
어영차 첫걸음 떼니 우주선이 나른다.
어머니
한 발은 슬리퍼에 다른 발엔 구두로
짝짝이 신발 신고 딸 출산에 달려오신
오늘도 그날과 같이 여전하신 어머니.
왕관
옛 모자 쓴 모습이 키 작게 보인다며
새 모자 선물하려 이것저것 고르는데
아서라 그런 말 마오 나 좋으면 그만이오.
밥심
식은 밥 앞에 두고 내 마음 바라보니
밥에는 마음 없고 마음 안에 밥이 있네
한 숟갈 입에 넣으니 오만 생각 스치네
찬밥이니 따순밥이니 비교하다 생각하니
밥을 퍼준 사람마음 무얼까 궁금한데
그 마음 있다없다를 가릴 것이 무어랴
사람은 하루 세 번 먹어야 산다지만
마음은 시시때때 챙겨야 볼 수 있네
천연색 만화경 같이 돌고도는 마음아.
그 별 하나
- 이산 김광섭 “저녁에”
그리움이 문득 찾아와
형언키 어려울 때
그 마음 삼키며
한 걸음 더 내딛는다
저녁엔
산그림자도 외로워
마을로 내려와
홀로 앉은 그 사람
가만히 안아준다
뭇 별들 유난한 밤,
저 멀리 流星 하나
길게 빗금 그을 때
저렇게
많은 별 중에
그 별 하나
쳐다본다.
다도해(多島海)
딸아이 둥근배 출산이 가까워지고
마당에 노란병아리 어미닭을 따라간다
개울가 새끼고양이 어미 뒤를 졸졸졸
울안 송아지는 엄마소를 보며 음매에
엄마소 팔러간다 장으로 팔러가네
트럭 위 어미 소울음 구슬프게 음매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 퍼붓는 포탄 속에
피 흘리는 아이 안고 어머니들 뛰어간다
생명의 묵시록인가 지구상의 끝자락인가
파도치는 바다에 살아있는 섬들
폭풍 비바람에 울부짖는 그들
검푸른 물 밑으로는 모두 하나이건만
아침해 떠오르면 마법양탄자 날고오고
고운 바람 불어오면 어둔 밤 물러가리
이윽고 세상 천지에 밝은 빛이 가득하리.
소나기
그리움은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질곡의 감옥이다 언제인가 우리는 아침마다 시를 외우며 함께 눈길, 빗길, 맑은 가을 길을 손잡고 걸었다 어느 비 내린 오후, 가을 공원에서 길을 잃고 그대는 숲길을 내내 헤메고 나는 그대 찾기를 보다 쉬이 포기하고 그만 돌아섰다 늦은 밤, 그대 손 안에 붉은 단풍잎 하나 빗물에 젖어 울고 있었다 그대는 그것을 가만히 내게 건네주며 말없이 뒤돌아 갔다
머언 먼 뒷날까지
여전히 그대 미소
못잊어 하였는데
아직도
화인火印 하나가
깊게 패여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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