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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감상

국제신문 [2024신춘문예 시조부문 응모작(10편)]

출산(出産)

 

지금

앞에 있는

이 생명 하나

어디서 왔나하고 경이롭게 살피다가

숨 죽여 깊은 생각에 하염없이 빠져드네

 

그동안

뭘 모르고

엄벙덤벙 살아왔나

딸아이 며늘아기 아내를 바라보다

그 사랑 보는 순간 불 데인 듯 놀랐네

 

아가야

어머니야

사랑하오 그대여

뼈를 깍는 희생이라 말로는 다 못하지

한 생명 울음소리에 나 이제야 눈뜨네.

 

 


 

가을

 

우주의 눈짓인가 생명 담은 시간인가

하나 둘 툭 투욱 시나브로 떨어지네

나 또한 이 생 다하면 저렇게 가야하나.

 

울긋불긋 벚꽃단풍 알록달록 낙엽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월 속에 지는데

저렇게 돌아다니다 무엇 되어 만날까

 

그대와 동행하는 익어가는 가을 길

가만히 껴안으면 나 어느덧 사라지고

내 사랑 그대 눈 속에 붉은 단풍 떠가네.

 


 

첫사랑

 

말 없는 눈빛으로 그대 손 맞잡으니

떨리는 입술 사이 향기로운 그대 숨결

나 오늘 그대와 둘이 오솔길을 걷는다

 

그윽한 숨소리로 그대 나를 부르고

따스한 음성 안에 소리 죽여 다가서니

커다란 눈망울 속에 흔들리는 은물결

 

포근한 그대 품에 뜨거운 내 손길이

향긋한 속살 속에 황홀하게 스며들고

샛노란 번쩍임으로 청실홍실 엮는다.

 


 

중력극복

 

첫아이 기적 앞에 감탄사 연발하는

첫돌을 앞에 두고 아기 처음 걷는다

하나아 둘 세엣 네엣, ! 넘어져 조심해

 

앙증 맞은 발가락에 한껏 힘을 모으는

예쁜 아기 아장걸음 우리 아기 걷는다

어영차 첫걸음 떼니 우주선이 나른다.

 


 

어머니

 

한 발은 슬리퍼에 다른 발엔 구두로

짝짝이 신발 신고 딸 출산에 달려오신

오늘도 그날과 같이 여전하신 어머니.

 


 

왕관

 

옛 모자 쓴 모습이 키 작게 보인다며

새 모자 선물하려 이것저것 고르는데

아서라 그런 말 마오 나 좋으면 그만이오.

 

 


 

밥심

 

식은 밥 앞에 두고 내 마음 바라보니

밥에는 마음 없고 마음 안에 밥이 있네

한 숟갈 입에 넣으니 오만 생각 스치네

 

찬밥이니 따순밥이니 비교하다 생각하니

밥을 퍼준 사람마음 무얼까 궁금한데

그 마음 있다없다를 가릴 것이 무어랴

 

사람은 하루 세 번 먹어야 산다지만

마음은 시시때때 챙겨야 볼 수 있네

천연색 만화경 같이 돌고도는 마음아.

 


 

그 별 하나

- 이산 김광섭 저녁에

 

그리움이 문득 찾아와

형언키 어려울 때

그 마음 삼키며

한 걸음 더 내딛는다

 

저녁엔

산그림자도 외로워

마을로 내려와

홀로 앉은 그 사람

가만히 안아준다

 

뭇 별들 유난한 밤,

저 멀리 流星 하나

길게 빗금 그을 때

 

저렇게

많은 별 중에

그 별 하나

쳐다본다.

 


 

다도해(多島海)

 

 

딸아이 둥근배 출산이 가까워지고

마당에 노란병아리 어미닭을 따라간다

개울가 새끼고양이 어미 뒤를 졸졸졸

 

울안 송아지는 엄마소를 보며 음매에

엄마소 팔러간다 장으로 팔러가네

트럭 위 어미 소울음 구슬프게 음매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 퍼붓는 포탄 속에

피 흘리는 아이 안고 어머니들 뛰어간다

생명의 묵시록인가 지구상의 끝자락인가

 

파도치는 바다에 살아있는 섬들

폭풍 비바람에 울부짖는 그들

검푸른 물 밑으로는 모두 하나이건만

 

아침해 떠오르면 마법양탄자 날고오고

고운 바람 불어오면 어둔 밤 물러가리

이윽고 세상 천지에 밝은 빛이 가득하리.

 

 


 

 

소나기

 

그리움은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질곡의 감옥이다언제인가 우리는 아침마다 시를 외우며 함께 눈길, 빗길, 맑은 가을 길을 손잡고 걸었다어느 비 내린 오후, 가을 공원에서 길을 잃고 그대는 숲길을 내내 헤메고 나는 그대 찾기를 보다 쉬이 포기하고 그만 돌아섰다늦은 밤, 그대 손 안에 붉은 단풍잎 하나 빗물에 젖어 울고 있었다그대는 그것을 가만히 내게 건네주며 말없이 뒤돌아 갔다

 

머언 먼 뒷날까지

여전히 그대 미소

못잊어 하였는데

 

아직도

화인火印 하나가

깊게 패여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