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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흩어져서 복음의 사람으로 사는 ‘확장 지향형 교회론’ 필요”

한규삼 목사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충현교회에서 축소사회로 흐르는 세태 속에서 새로운 교회론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 Copyright@국민일보
 

‘축소사회로 급변하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교회론은 무엇일까.’

최근 들어 한규삼 서울 충현교회 목사가 집중하는 주제다. 한 목사는 “축소사회 속에서 과거 숫자 중심의 부흥에만 집중한다면 교회에는 미래가 없다”면서 “경직된 교회론에서 벗어나 탄력성 있는 사역을 지향하는 게 바로 축소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길”이라고 밝혔다. 한 목사를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의 교회에서 만나 ‘축소’ ‘소멸’ ‘부흥의 새로운 길’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구 문제로 소멸하는 도시가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때 교회는 이미 급격한 축소를 경험했다. 다만 감염병이 끝나면 모든 게 회복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았다. 지금 교회는 더욱 큰 위기와 직면했다. 우리는 지금 인구 감소의 한 중간에 놓였다. 진짜 위기가 다가오는 셈이다. 하지만 절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복음에 더욱 집중하고 영적이며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는 데 필요한 자극제라고 본다. 성경에는 ‘열 처녀 비유’가 나오는데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교회도 지혜롭게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소멸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교회의 사역을 통해서도 배울 점이 많다. 이들 지역 교회를 통해 위기 대처의 길을 배우고 또 지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신학자들의 도움도 시급하다. 목회자가 현장에서 새로운 목회의 길을 열기 위해선 신학자가 길을 제시해야 한다. 조화롭게 대책을 마련한다면 기회가 된다.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기회다.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교회가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크지만 구현하는 게 어렵다.

“변화를 위해 새로운 교회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 해 전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 한 분과 한국교회에 관해 이야기 했었다. 그분이 본 한국교회는 ‘건물 중심’ ‘대형화’ ‘보수신학’ 등이었다. 이 분 이야기를 바탕으로 보면 규모에 집중하면서 시대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융통성을 잃은 게 한국 교회 현주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걸 고수하면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위기가 찾아오면 교인은 교회를 떠나는데 ‘교회로 오라’는 구호만으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사실 교회는 6·25전쟁 이후 그렇다 할 위기가 없었다. 안정적으로 성장한 게 오히려 위기 대응에 약한 교회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앞서도 말했지만 목사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배우고 깨달아야 하고 신학자들은 더욱 깊이 연구해야 한다. 새로운 교회론, 신학적 입장이 제시돼야 한다. ‘확장 지향형 교회론’에 대한 공감대도 필요하다. 흩어져서 복음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동안 교회는 성장을 통한 부흥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복음적 영향력에는 소홀했다. 교회의 자원과 힘으로 교회다움을 전했다면 이제는 복음이 일하게 해야 한다. 복음적 부흥과 삶이 변하는 부흥을 경험해야 한다. 이게 바로 ‘부흥의 새길’이 아닐까 한다. 새로운 목회자를 청빙할 때도 ‘5년 뒤 교세를 얼마나 불릴 것이냐’가 아니라 ‘5년 뒤 우리 교회를 어떤 신앙 공동체로 만들 것인지’ 물어야 한다. 1970년대 우린 ‘순교적 신앙’을 갖고 있었고 이는 성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뒤가 없으니 공허하다. 축소사회에 대응할 교회만의 ‘무엇’이 필요하다. 교회 재정 지출도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축소사회가 되면서 교회들이 재정을 더욱 알뜰하게 써야 한다. 헌금에 관한 관심보다 지출을 세밀하게 관리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정말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내고 교회의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 교회의 재정 건전성이 건강한 부흥을 위한 첩경이다.”

-‘교회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졌지만 교회의 역할이 제한적인 것도 현실이다.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 교회다움의 출발은 결국 신앙인으로서 모범적으로 행동하는 지역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큰 교회도 규모를 앞세울 이유는 없다. 모든 성도가 신앙인답게 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규모를 앞세우면 전반적인 교세 감소 속에서 활로를 찾기 어렵다. 바람직한 공공성이란 하나님이 크다는 걸 믿고 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교회 담을 넘어 크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축소사회 속 교회 공공성의 핵심이다. 더욱이 지자체와도 협력할 부분이 있다. 이 경우 교회가 지닌 한계를 뛰어넘어 지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모든 게 변하는 세상 속,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교회는 ‘희망 브리지’가 돼야 한다.

“맞다. 축소사회 속에서 교회가 사회와 교회를 잇는 희망 브리지가 돼야 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언약이 나온다. 하나님과의 약속 안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젊은이들이 특히 어렵다. 다만 지금 하는 일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초조해 하는데 그 속에 매몰되지는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분명한 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반드시 살려주신다는 점이다. 모든 성도에게 희망이 있는 이유다. 더불어 각자 희망 속에서 살아낸 경험을 나눠야 한다. 이게 바로 희망 브리지를 구현하는 길이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