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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원불교의 감정 사용 설명서

[설교] 원불교의 감정 사용 설명서

  • 원불교신문 이지은 교무  2024.05.23  호수 2165

 

이지은 교무


지난해 원달마센터 훈련 중 회화시간에 한 참가자가 “감정이 일어난다는 게 괜찮은 것인가요?” 하고 질문했습니다. 불교를 접해보지 않은 미국 사람들이 불교나 원불교를 처음 접하면, 마음에 어떤 출렁임도 없게 하는 것이 수행의 목적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공’이 영어로 ‘Emptiness(공허)’ 라고 번역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선입견이기도 합니다.

수행하는 이들에게 ‘감정’이란 과연 어떻게 다뤄야 하는 대상일까요? 진리를 깨달은 분들은 모든 감정을 초월해 언제나 초연하기만 할까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제자 이동안이 열반하자 한참 동안 묵념하신 후 눈물을 흘리셨으며, 이에 제자들이 “너무 상심하지 마옵소서”라고 말하였다는 내용이 <대종경> 실시품에 나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감정에 대해서 어떤 가르침을 주셨을까요?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나는 그대들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을 억지로 없애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자유로운 마음 기틀을 걸림 없이 운용하되 중도에만 어그러지지 않게 하라고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대종경> 수행품 37장)

감정을 중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즉 희로애락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며, 다만 감정을 ‘중도’에 맞게 잘 사용하는 게 공부의 방향임을 분명히 일러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도(中道) 에서 중(中)이란 희로애락의 감정과 분별이 발하기 이전의 마음상태를 말합니다. 도(道)란 중에 바탕하여 감정이 절도에 맞게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감정이 일어날 때 어떻게 하면 이 중도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첫째, 감정은 수면에 일어나는 물결과 같이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감정이란 마치 수면의 물결과 같이 일어났다가도 다음 순간 사라질 수 있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우리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면,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좀 더 쉬워집니다.
 

나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황에서 가장 바른 취사를 하는 것. 

신경해부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 박사는 감정이 일어나면 뇌에서 화학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화학물질은 약 90초에서 최고조에 달한 후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90초보다 훨씬 더 오래 불쾌한 감정에 머물까요? 이것은 화 자체가 계속 지속된다기보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그와 관련된 스토리를 재생함으로써 그 감정을 연장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좌선을 하면서 생각과 감정이 그친 자리에 더 자주, 오래 머물러 있으면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이 ‘나’가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기 전의 그 자리가 참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둘째, 감정을 중도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어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감정, 특히 우리를 힘들게 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직면한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화, 원망, 수치심, 무력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면 자기도 모르게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이고 힘든 감정들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곳에서 탈출구나 위안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감정을 중도에 맞게 사용하려면, 일어난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 준 후에, ‘지금 내가 취해야 할 바른 취사는 무엇일까?’라고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내면에서 나오는 답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질문을 하는 관문을 거치지 않고 감정을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면 그 결과로 많은 고통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되돌리기 어려운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중요한 책임을 등한시하고 나중에서야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의 감정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상황에서 가장 바른 취사를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회피하지도, 억누르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자책하는 대신 일어난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대로 바라봐주고, 중도에 맞는 취사를 용기 있게 하는 공부를 통해 마음의 자유를 얻고 행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원달마센터

[2024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