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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소승小乘과 대승大乘

[삶의 지혜] 소승小乘과 대승大乘

  • 양은철 교무  2024.06.14 호수 2169

 

양은철 교무

[원불교신문=양은철 교무] 원불교에서는 ‘견성성불’보다 ‘성불제중’이 중요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개인의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소승과 중생의 구제를 강조하는 대승, 어느 쪽이 부처님 본의에 더 가까울까? 

불교를 정확히 분류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지난(至難)한 일이지만, 크게 보면 근본불교 혹은 상좌부불교(Theravada), 대승불교(Mahayana), 금강승불교 혹은 밀교(Vajrayana)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소승불교(Hinayana)와 대승불교로 나눠 왔지만, ‘작은 수레’란 의미의 소승은 대승불교 측에서 폄하해 부르는 표현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상좌부불교가 분리 발전되어 왔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진의는 시간적 순차성뿐만 아니라 상호연관성에도 있어 보인다. 제국주의 예에서 보듯이 평천하를 도외시한 치국도 인류의 행복을 저해하지만, 수신 없는 제가 역시 생각할 수 없다. 

소승과 대승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깨달으면 중생을 제도하지 않을 수 없고, 중생 제도에 관심이 없다면 진정한 깨달음이라 하기 어렵다. 가족과 이웃의 행복을 도외시한 혼자만의 행복을 진정한 행복이라 말하기도 어렵지만, 내 코가 석자인 상태에서 이웃에게 진리와 행복을 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공부의 기점은 자신의 마음공부에 두고 제도의 기점은 자신의 제도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다 제도한 후에 남을 제도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공부든 제도사업이든 자신에서부터 출발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불교는 깨달음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다. 광대무량한 낙원세계 건설도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개인의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소승이 불교의 본령이라는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철저한 수행과 깨달음이 중생 제도의 기본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예비교역자 시절 필자에게 힘이 된 것은 가끔 동지들이 사다 줬던 빵과 순대가 아닌, 치열하게 정진하는 동지들의 모습이었다. 의아했던 것은 이러한 동지들이 ‘독공’이라는 비난과 함께 왕따 아닌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교단 내에도 이런 정서가 없다 하기 어렵다. 

일체생령을 낙원으로 인도하려는 대승의 가치가 개인의 수행과 깨달음이라는 소승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훼손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미주서부훈련원

[2024년 6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