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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감상

3인칭 처벌

산에 등산 간 아들이 멧돼지 사냥꾼이 쏜 총알에 맞았다. 만일 아들이 죽었으면 그 아버지는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물음을 스승님께 여쭤보는 예화가 있다. 결론은 법에 그 처리를 맡기고 자신은 원한을 놓는 것이 공정한 처리라는 말씀을 스승께서 대답하신다.

최근 사회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보복하는 2인칭 처벌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자(2023.11.16.) 경향신문의  오창민 논설위원 칼럼 "공익과 거리 먼 '공익의 대표자'" 칼럼을 이곳에 참고로 업로드한다.


 

공익과 거리 먼 ‘공익의 대표자’

2023.11.15 20:28 입력

이선경의 <21세기에 새로 쓴 인간불평등사>를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일반적인 처벌의 형태는 ‘2인칭’이다. 피해를 입었거나 입었다고 생각하는 당사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보복을 가하는 방식이다. 2인칭 처벌은 단점이 있다. 강자에게 유리하고, 불평등과 착취를 초래한다. 개인 차원을 넘어 친·인척이나 집단이 가세하면 공동체 전체가 갈등에 휩싸이고 불행에 빠져들 수 있다. 과잉 대응과 피의 보복이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명사회일수록 ‘3인칭’ 처벌이 발달한다. 당사자 아닌 제3자가 처벌하는 시스템이다. 분노 등 감정의 영향을 당사자보다 덜 받으므로 절제되고 객관적인 처벌이 가능하다.

3인칭 처벌은 인간이 대규모 협력사회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3인칭 처벌을 제도화한 것이 한국에선 검찰이다.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라 칭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의 칼날은 권력자의 정적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만 맞춰져 있다. 대장동 개발 의혹으로 시작해 성남FC, 백현동,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이 대표에 대한 수사가 1년 반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특수부 검사 수십명이 동원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를 중심으로 지난 9월에 꾸려진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의 타깃도 결국은 이 대표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이다. 검찰은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보도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를 검증한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 보도 배후에 이 대표와 민주당이 있다고 의심하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시절 “검사가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이지 검사냐”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를 지켜보고 당해본 사람은 안다. 검찰이 공정한 수사라고 강변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고 천명해도, 정치적 의도와 속셈이 뻔히 보이는 수사가 있다. 수사는 내용도 정당해야 하지만 절차적으로도 흠결이 없어야 한다. 수사 대상에게 사적 보복이라는 인상이나 오해를 일으키게 해서는 곤란하다. 2인칭 처벌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순간 검찰 수사는 여론의 심판을 받고 동력을 상실한다. 반발과 보복, 더 큰 보복이라는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야당과 검찰의 충돌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 양상은 가히 역대급이라 할 만하다. 민주당이 비리와 부패 연루 의혹이 있는 검사 개인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자, 이원석 검찰총장도 민주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민주당의 대응도 문제지만, 스스로 정치의 사각 링에 뛰어든 검찰 수장의 언행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이 총장에 대한 탄핵설까지 나오면서 사태가 확전일로를 걷고 있다.

검찰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바닥이다. 최근 ‘시사인’이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검사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하고 있다”라는 진술에 ‘그렇다’는 응답이 37.4%,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58.2%였다. “검사가 권력자의 부패와 기업의 비리를 단호하게 수사하고 있다”라는 진술에는 67.9%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검찰 이미지를 묻는 항목에서는 ‘권력지향적이다’라는 응답이 84.6%인 반면 ‘정의롭다’는 응답은 33.2%에 불과했다.

3인칭 처벌의 획기적인 부산물은 구성원들에게 사회적으로 옳은 행동이 무엇이고, 그른 행동을 했을 때 어떤 시정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을 공유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도덕과 법, 정의라는 개념의 원형질이다. 이를 바탕으로 예측 가능하고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검찰의 신뢰 추락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검찰을 정권의 전리품으로 격하시키고, 사회에 약육강식 풍조를 퍼뜨린다. 약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공동체를 지탱해온 구성원들의 준법의식도 후퇴한다. 앞으로는 사기범이나 마약사범도 편파·표적 수사의 희생자라고 떠벌릴 것이다.

인간에게 특별히 발달한 처벌은 ‘1인칭’이라고 한다. 윤동주의 시구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일이다. 검찰의 자숙과 반성이 필요하다. ‘시사인’ 조사를 보면 시민의 77.8%는 “대다수 검사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지만, 일부 검사들이 정치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고 여긴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정치검사들을 손절해야 한다. 이것이 더 이상의 신뢰 하락을 막고, 검찰이 사정기관으로서 최소한의 권위와 중립성을 지키는 길이다.

오창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