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각감상

불교신문 [2024신춘문예 응모작(5편)]

  조각사彫刻士

 

  삼천 년 아름드리 관솔옹이 가지에

  부처를 다듬는다 아닌 마음 깎아 낸다 ​

  아니다 아니다 이것 역시 아니다며

  고개 들어 눈 감고 숨 깊게 들이킨 후​

  험상궂은 그 얼굴에 두 눈 마저 새기고서​

  이윽고 몸 일으켜서

  사방팔방 둘러본다

 

  맑은물 그릇안에 한 조각 파란 하늘

  뭉게구름 떠가다 속절없이 흩어지면​

  가만히 몸 낮춰서 백팔배를 올린다​

  훤한 이마 한가운데 심안心眼이 드러나고

  거룩한 두상 위엔 둥근 백회百會 자릴 하네​

  이윽고 두 뺨 적시는

  수정구슬 구슬들​

 

  어느덧 사위어 가는 마음밭의 불꽃들이

  푸르른 재 흩날리며 잔불마저 사라질 때​

 내 마음 아연 새로워 소스라치게 놀라네

 

  파란고해 생령 위해 나 또한 횃불 되면

  발끝부터 머리까지 너와 나 둘이 아냐​

  한 걸음 더 내디디며 불꽃으로 소신공양.


​ 

 

 좌정坐定​

 

  무릎 위에 두 손 놓고

  단전에 힘 툭 부리니​

  이윽고 텅 빈 그곳 무언가 비치는데​

  아서라 천년의 바람 지나간들 어떠랴.


 

 

심전心田

 

  우후죽순 솟아나는 대숲의 여린 싹들

  크기도 가지가지 자리도 여기저기

  모양은 하나이건만 껍질은 겹겹이네

  어디서 힘을 받아 저토록 토실할꼬

  지긋히 실눈 뜨고 한참을 바라보다

  망연히 내 마음 밭을 살펴보게 되었네​

 

  저 싹들 깊은 뿌리 세세생생 인연되어

  이토록 모질게 끊임없이 솟아나니

  아이야 크게 눈떠서 그 마음을 살피세.


 

 

  막사발

 

  자전거에 폐지 가득

  홀로 끄는 저 늙은이

  톱니 빠진 바퀴모양

  절뚝이며 가고 있다

  그 모습 쳐다보다가

  聖者라는 한 생각

 

  치열한 불꽃 견뎌

  거칠해진 그 그릇을

  그동안 몰라주어

  눈 씻고 보았는데

  나 이제 속눈이 뜨여

  그냥 봐도 알겠네

 

  시원한 바람 불고

  먼 산에 해가 뜨니

  밥그릇 속 정한수에

  둥근적막 여여한데

  그대여

  누구시기에

  품이 그리 너른가.

 

     (막사발 Note : 절뚝인다. 그래도 현재 그의 중심은 확실하다. 한 쪽 다리에 통증이 심한 모양이다. 마치 척추관협착증으로 왼쪽 다리 허벅지에서 발끝까지 신경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찌를 때 절뚝거리던 그 모습이다. 번창하는 신도시 넓은 신작로 옆으로 폐지를 가득 실은 자전거를 중심 거룩하게 지탱하며 끌고 가는 노인, 그는 오직 지금 이 순간 자전거의 중심 유지에 온 신경을 모은다. 중심의 성자(中心 聖者). 집중이 이것이요 일심이 이것이다.

​      그는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이웃들에게 감사하며 자신의 자전거 뒤에 얹혀있는 귀한 물건값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돈을 손에 쥘 때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 깡마른 팔뚝 위에 지렁이 같은 힘줄이 솟아 꿈틀거린다. 아픈 다리에 마비가 오기 시작한다. 통증을 참아내던 종아리에 쥐가 난다. 상관하지 않는다. 화물 자전거의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몸을 숙이며 두 팔에 힘을 모은다. 먼 지점을 향해 시선을 모을 때, 푸른 불꽃 번쩍이는 목적지가 저만치 보인다. 차량 과속을 방지하는 둔턱에 화물이 무거워서인지 자전거 바퀴가 더 이상 앞으로 움직이질 않는다. 다시 한 번 힘을 줘도 꼼짝하지 않는다.

     잠시 허리를 펴고 멈추어 선다. 몸을 자전거에 비스듬이 기대어 서서 중심을 잡고 숨을 모은다. 한 손으로 목에 둘렀던 세수 타월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는다. 짧은 휴식이다. 주변을 둘러본다. 막막하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꼬...

     중심을 잡으며 서 있던 자전거가 어떤 힘에 갑자기 앞으로 밀리는 기척이 느껴진다. 다시 두 손으로 자전거의 중심을 잡으며, 한 손으로 화물 짐을 잡고 다른 손으로 자전거 운전대를 꽉 잡고 힘을 준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간다. ‘누가 뒤에서 내 자전거를 밀어주고 있는 것인가...’ 그는 그냥 말없이 감사하다. 그 힘든 순간에도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이 짐을 내려놓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어느덧 폐지를 받아주는 재활용센터에 다다랐다. 짐자전거 뒷바퀴에 달린 스토퍼를 바로 세우고 나서 자전거 뒤를 살핀다. 아, 웬 고등학생이 가방을 맨 채 그의 자전거 뒤를 밀며 여기까지 함께 온 것이다. 정말이지 그 학생이 기특하고 고맙다. “학생 고마워요.”라고 말하자 그 학생은 땀에 젖은 얼굴로 씨익 웃고는 뒤돌아 뛰어간다. 어디선가 싱싱한 여름 향기가 코 끝을 스친다.

     재활용센터 문 입구에 설치된 계근대에 자전거를 올려세우고 그는 사무실에 가서 저울 무게를 살핀다. 어제보다 계근량이 약간 많다. 뿌듯하다. 사무실 생수대 옆에 놓인 일회용 커피 한 봉지를 따서 뜨거운 물에 풀어 후후 불면서 마신다. ‘오늘도 하루일과가 끝났다. 오직 감사할 뿐!’)


 

  만공(滿空)​

 

  달덩이 백자 항아리 민머리가 드러나자

  손끝에 닿는 촉감 번뜩이는 이 찰나

  어느덧 영산회상에 봄소식이 다시 와​

 

  가없는 그 은혜는 어디에 두고 와서

  기쁨도 슬픔도 회색으로 엮어내어

  이토록 그대 머리를 밀어달라 하나요​

 

  아내는 독경삼매 남편은 면도사 되어

  한 올도 남김없이 사악사악 깎으면

  텅 비어 가득 찬 마음 삼천년이 흐르네.

 

     (만공 Note : 아내의 머리카락이 시나브로 빠지기 시작한다. 지난달에 맞은 항암제 주사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인가. 자고 나면 이부자리 곳곳에 거실과 방 구석구석에 아내의 긴 머리카락들이 무수히 눈에 띈다. 이를 보다 못한 아내가 남편에게 면도기로 자신의 머리를 남김없이 모두 밀어달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어느 늦은 저녁, 삼천 년 전 영산회상 도반처럼 그 아내는 독경삼매에 들고, 남편은 합장한 후 면도기를 손에 쥐고 아내 머리를 밀기 시작한다. 사각사각….

     간혹 손끝에 닿는 아내 머리피부의 감촉에, 번뜩이며 등골을 타고 내리는 서늘함에 전율을 느낀다. 남편은 아내 머리가 면도날에 베일까 봐 조심조심하며 머리를 미는데, 집중 또 집중. 창밖에는 달빛만 교교하다.

     이윽고 파르라니 드러나는 아내의 민머리가 유백색 둥근 달항아리처럼 은은히 빛난다. 매끈하게 깍아 낸 아내의 민머리를 어루만지는 순간, 그 말랑하고 몰캉한 촉감에 남편은 한없이 아득해진다.

     말로써 형언키 어려운 연민이... 두 사람 사이를 천천히 물들인다. 하이얀 한지에 연초록 물감이 번진다.)

 


 

社告 : 2024불교신문 신춘문예 (불교신문인터넷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