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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도 사은이고 몰라도 사은이다

[국민일보]“기독교 신앙의 기초체력은 문해력…이 힘, 소설로 키워라”

2024. 03. 15. 국민일보 양민경 님의 스토리

 

 
 
이정일 작가가 지난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에서 기독교 신앙 형성에 있어 소설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 Copyright@국민일보
 

“소설의 이야기에는 매듭 같은 게 있어서 이를 잡아당기면 온 우주가 열리며 아주 잠깐 놀라운 비밀을 드러낸다.… 매듭이 풀리는 건 순간이다.… 신기한 건 조금 전까지 ‘나라고 느꼈던 나’가 ‘전혀 다른 나’가 된 듯 느껴진다.”

독자가 소설에 빠져드는 순간은 ‘한순간 뇌리에 꽂히는 강렬한 문장’을 발견했을 때다. 신간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샘솟는기쁨)의 저자 이정일(61) 작가도 그랬다. 프랑스 만화가 장 자크 로니에의 소설 ‘영혼의 기억’을 읽던 그는 한 문장을 읽다가 ‘소설에 몰입할 때 느끼는 희열의 순간’을 경험했다. “마음에 막연히 있던 어떤 문장이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다.

이 작가는 ‘이야기의 매듭’을 당긴 이 한 문장을 시작으로 이번 책을 완성했다. 책 역시 ‘마음에 끌린 소설 속 문장이 개인의 삶과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를 지난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에서 만났다. 이 작가는 “1년여간 이곳을 다니며 이번 책의 원고를 완성했다”고 했다.

그간 그는 문학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관계를 밀도 높은 글로 풀어내는 데 천착해왔다. 이번엔 문학 중에서도 소설에 집중한 이유를 묻자 “사소한 기쁨을 나누는 게 왜 중요한지를 알리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작가는 “우리 사회는 거대 담론을 다루는 데 익숙하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라며 “하나님 나라와 정의, 진리와 소명 등을 말하지만 정작 일상을 논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설은 사소한 일상 이야기 그 자체라 읽다 보면 현재와 순간, 지금과 오늘 같은 일상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을 뒤흔든 유명 소설 역시 일상을 다뤘다.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한 어부의 5일간의 일상 이야기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고난의 시기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그렸다.

그가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건 ‘나다운 나로 살자’는 것이다. “남이 만든 세계가 아닌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려면 남들과 다른 나만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하나님은 각자의 삶에 가장 적절한 것을 선물로 주셨다. 이를 삶에서 펼쳐내야 하는데 남의 생각에 따라 살 때가 얼마나 많으냐”고 되물었다. 그는 “성경의 나다움은 나를 없애는 게 아니라 나다운 나를 드러내는 과정”이라며 고린도후서 4장 16절의 ‘속사람’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속사람을 문학적으로 바꾸면 ‘내 안의 나’로 표현할 수 있다.

이정일 작가는 “예측불허의 삶 가운데 불확실한 혼돈을 이겨내는 힘은 단단한 신앙에서 나온다. 소설을 읽으며 이런 신앙을 길러내는 성도가 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Copyright@국민일보

단문과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이들이 점차 느는 요즘에 “문해력은 신앙의 기초 체력”임을 주장하는 것도 인상 깊다. 이 작가는 “이전엔 글자의 뜻과 맥락, 행간을 이해하는 게 문해력의 전부였다면 지금은 여기에 감정도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문해력을 갖춘 이들은 “성경을 볼 때도 남다르다”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례로 성경에서 모세가 40년간 광야에서 지낸 대목을 감정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전직 왕족인 그가 홀로 양 떼를 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란 접근이 가능하다. 곧 문해력이 성경 인물인 모세의 일생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모세의 명암을 자신의 삶과 비교해볼 기회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체력은 문해력…이 힘, 소설로 키워라”© Copyright@국민일보

책에는 ‘침묵’ ‘데미지’ ‘천국의 열쇠’ ‘데미안’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 속 명문장이 간단없이 이어진다. 그는 “따뜻하되 희망을 주고 성찰의 계기를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만 “‘데미지’가 이런 소설은 아니지만 다윗이 간음했을 때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 소개했다. 이처럼 성경 본문과 소설을 같이 읽으면 풍부한 묵상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소설을 읽을 때 “핵심이나 의미 파악보다는 작품 자체를 읽으며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 작가의 바람은 한국교회에 더 많은 독서모임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성경공부나 QT(말씀묵상) 모임에선 속내를 노출하기 힘들지만 소설 독서모임에선 다르다. 허구의 이야기라 생각을 말하는 데 부담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예측불허의 삶 가운데 불확실한 혼돈을 이겨내는 힘은 단단한 신앙에서 나온다”며 “의미나 정보 교류가 아닌 감정 교류 위주의 독서모임을 하며 이런 신앙을 길러내는 성도가 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