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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도 사은이고 몰라도 사은이다

사람 품격

  행복한 사람의 품격에는 트라이포트 세 발처럼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마음에 여유가 있다.
  둘째, 생사에 해탈하여 생사에 두려움이 조금도 없다
  세째, 인과에 통달하여 죄와 복을 임의로 할 능력이 있다. 다시 말하면 죄는 물리치고 복은 불러 들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은 삶의 편안함과 행복을 누릴 품격을 갖춘 사람이다.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 아내가 내 습관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아침이다. 출근에 바쁜 사람의 등에다 대고 이런 저런 말을 한다. "휴대폰 챙겼나요? 자동차키는? 마스크는...?", 나는 속으로 '아이고 또 잔소리...' 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유있게 대답한다. " 당신 때문에 내가 산다아이가~, 고맙소이다!"

  예전에 나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면 짜증을 냈다. "아니, 출근할 때 그런 말을 하면 내 기분이 상하지 않겠나... (여자가...)"이런 말과 생각을 하며, 회사에 출근해서도 나는 왼종일 마음 속으로 씩씩거리다가 저녁에 귀가하면 아내와의 2차전으로 다시 한바탕 언쟁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나였기에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정말 많이 변했다 내가.

  성격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대견하다는 생각을 품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떤 경계를 당하면 벌컥하며 성질을 부리는 나를 보면 우습기도하고 여전히 내 수양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말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하나, 둘, 셋...하고 단 3초만 멈추고 나서 말과 행동을 하자고 늘 유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그 습관이 들지 못하여 즉흥적 언행을 하고 나서 스스로 후회할 때가 많다.   

  다만 나의 마음 바탕은 선함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늘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 유념하고 있고 또 행동에 옮길 때 주의에 주의를 하자고 다짐을 하고 있다. 느긋하게 말하고 민첩하게 행동하자. 마음에 여유란 해야할 일이 있을 때 미리미리 준비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덕목이다. 

  생사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주의 진리를 체득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말은 쉽게 이해되고 또 수긍할 수 있는 명제같지만, 실천적으로 그렇게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보통 생사해탈한 사람은 생사라는 화두에 대해 부단한 자기 수양을 쌓은 사람이다. 생사에 대한 두려움은 생사가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체득한 사람인데 이는 부단한 적공으로 내공을 쌓은 사람만이 가능한 덕목이다. 

  이호우 선생의 시조 "河"의 종장에 "大河는 소릴 거두고 흐를대로 흐른다"는 표현이 있다. 생과 사는 인생의 필연이다. 우리가 이를 수긍하여 '나고 살고 죽음'에 대해 순리에 따라 편안히 살다 가는 사람이 왜 이렇게 드물까? 자신의 삶에 왜 우리는 허덕이며, 불안을 느끼며, 심지어 두려워하는 마음에 고통스러워하며 이에 속박될까? 물론 생명의 본능이지만...

  인과, 선인선과 악인악과, 털끝만한 틈도 없을 만큼 주고 받는 이 진리는 무시광겁(無始廣劫)에 숨었다 드러났다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뜻하지 아니한 재앙이나 뜻하지 아니한 기쁨을 당할 때, 이를 믿느냐 믿지 않고 우연의 소치로 돌리느냐는 각자의 자유이겠지만, 이미 이전에 고통과 기쁨의 갈림길에서 운전대 역할을 했던 것은 이에 대한 믿음을 가지느냐 못가지느냐로 가름지어지고 만다.

  우리에게 만물의 모습이 보이는 모습도 있지만 만물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진리도 분명 있다는 것을 나는 어렵풋하게 느끼고 있는 이즈음이다. 

  인과에 통달한 사람이란, 고통과 기쁨과 행불행에 결코 연연치 않는 의연함을 갖춘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들이 필히 갖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의 여유를 얻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죄복을 임의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이 우리 인생의 궁극 목표로 삼아 하루 하루 또 하루 끊임없이 쉼 없이 정성에 정성을 드려서 살아가길 굳게 다짐한다.